실험 데이터를 표로 정리하거나, 관찰 결과를 문장으로 다듬거나, 참고문헌을 요약할 때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쓰는 연구자가 이미 흔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연구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어도 되는지는 별개 문제입니다. 연구노트는 "내가 직접 수행하고 관찰한 사실의 기록"이라는 전제로 법적 증거력을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9월 20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한 "국가연구개발 AI 연구윤리 가이드"는 이 질문에 처음으로 공식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 글은 가이드의 핵심 내용을 연구노트 작성 실무 기준으로 풀어봅니다.
가이드가 나온 배경 — "책임은 AI가 아니라 연구자에게"
가이드의 기본 원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국가연구개발에서 AI의 역할은 도구로 제한되며,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과 권리는 AI를 활용한 연구자에게 귀속된다." AI가 만든 문장이든 표든, 연구노트에 실리는 순간 그 내용의 진위·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연구자 본인이 진다는 뜻입니다.
이 원칙이 나온 배경은 생성형 AI 특유의 환각(hallucination) 문제입니다. 같은 시기 법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소송 서류에 AI가 지어낸 가짜 판례를 인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법연수원이 2026년 9월 4일 "AI 활용 허위 법령 등 인용 대응 방안"을 주제로 법관 연수를 열었을 정도입니다. 한 사건에서는 서면에 인용된 판례 40건 중 39건이 존재하지 않는 가짜였습니다. 연구노트도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 AI가 그럴듯하게 요약한 수치나 참고문헌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틀렸을 수 있고,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옮기면 연구노트 자체의 신뢰성이 흔들립니다.
7대 권고사항, 연구노트에는 이렇게 적용된다
가이드는 AI 활용 시 지켜야 할 7가지 사항을 제시합니다. 연구노트 작성이라는 구체적 상황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권고사항 | 연구노트 작성 시 의미 |
|---|---|
| 사실관계 검증 | AI가 요약·계산한 수치·인용문을 원본 데이터·문헌과 대조 없이 그대로 옮겨 적지 않는다 |
| 주체적 판단 | AI 출력을 논리적 타당성과 전문 지식에 따라 검토·재구성하고, 자신의 관점을 반영한다 |
| 투명성 확보 | 어느 항목을 AI로 작성했는지, 어떤 모델·버전을 썼는지 노트에 남긴다 |
| 결과 신뢰성 관리 | AI가 만든 결론을 실험 결과의 최종 판단으로 쓰지 않고, 근거 데이터를 함께 남긴다 |
| 정책·규정 준수 | 소속 기관·과제의 연구노트 지침(자필 원칙, 전자서명 요건 등)과 충돌하지 않는지 확인한다 |
| 보안 확보 | 미공개 실험 데이터·과제 내용을 외부 AI 서비스에 입력하지 않는다 |
| 개인정보 보호 | 피험자·공동연구자 개인정보가 포함된 내용을 AI에 입력하지 않는다 |
특히 평가·심사 국면에는 별도 기준이 붙습니다. 과제 평가나 논문 심사를 하는 평가자는 심사 대상 자료를 외부 AI에 입력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평가받는 연구자는 AI를 이용해 심사 기준을 회피하거나 평가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습니다.
노트에 "AI가 썼다"를 어떻게 남기나
가이드는 원칙만 던져놓지 않고, 실무에 바로 쓸 수 있는 두 가지 서식을 함께 제공합니다 — 연구자 자가진단표와 AI 활용 여부 공개 서식입니다. 연구노트 작성에 그대로 적용하면 다음 체크리스트가 됩니다.
- [ ] 어느 페이지·항목을 AI로 작성했는지 표시했는가
- [ ] 사용한 AI 모델명·버전을 기록했는가 (예: "GPT-5, 2026-09 버전")
- [ ] AI를 쓴 목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었는가 — 정보 수집인지, 데이터
추론인지, 문법·오타 점검인지, 단순 번역인지에 따라 신뢰도가 다르게 평가된다
- [ ] AI 출력을 검증한 근거(원본 데이터, 대조 문헌)를 함께 남겼는가
- [ ] 최종 판단과 서명은 연구자 본인이 했는가 — 기록자 서명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이 표시를 생략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이드 자체에 별도 벌칙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노트가 연구부정 조사의 1차 증거로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집니다. AI가 만든 오류가 검증 없이 실렸다가 나중에 발견되면, "몰랐다"는 해명보다 "AI를 언제, 어디까지 썼는지 스스로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 연구노트 지침과 충돌하지 않는가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노트 지침은 오랫동안 "연구자 본인이 직접, 그때 그때" 기록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연구노트 작성법 참조). AI 활용 가이드는 이 원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 오히려 "AI는 도구일 뿐, 관찰과 판단의 주체는 연구자"라는 원래 원칙을 AI 시대에 맞게 재확인한 쪽에 가깝습니다. 종이 노트라면 AI 출력물을 인쇄해 붙이고 그 옆에 "AI 활용, GPT-5, 검증 완료"라고 손으로 적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전자연구노트라면 항목마다 AI 활용 여부를 메타데이터로 남기고, 그 기록 시점 자체를 제3자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고정해 두는 편이 나중에 "이 항목을 언제, 무엇으로 작성했는가"라는 질문에 더 명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 원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속 기관·과제에 이미 별도의 AI 활용 지침이 있다면 이번 가이드와의 우선순위를 주관기관·전문기관에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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